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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가?

발상의 방법
발상(發想). 한자를 그대로 풀면 ‘생각을 쏘다, 쏘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발()은 ‘쏘다, 가다, 떠나다, 보내다, 파견하다’를 뜻한다. 생각을 쏘고, 다른 생각을 향해 가고, 굳어버린 익숙한 생각을 떠나보내고, 낯설고 독특하고 새로운 생각을 향해 내가 나를 파견하는 행위가 발상이다. 발상은 지금-여기에서 다른-저곳으로 이동하는 적극적인 생각의 모험이자, 세계와 나를 새롭게 설계하는 존재 전환의 모험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쏘는 발상에서 시작한다. 생각은 글쓰기의 엔진이다. 생각하지 않고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생각하지 않고 글을 쓸 수는 없다. 생각은 주제를 결정하고, 구성을 설계하며, 단어와 문장과 단락을 이어나가는 힘이다. 은유와 역설 등의 수사를 고안하고, 나만의 표현을 만들며, 단어 하나도 더 적절하고 독특한 것을 찾는 고민의 과정이다.

발상하는 주체는 상상, 공상, 몽상, 직감, 추측, (재)해석, 비판, 소망, 우연한 계기 등 다양한 생각의 능력을 사용한다. 인문학적인 발상만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발상도 유사하다. 한 예로, 알다시피 뉴턴이 중력을 발견한 것은 연구실이 아니라 사과가 떨어지는 나무 아래서였고,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Eureka!”를 외치며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것은 목욕탕에서 물속에 들어가 앉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직관과 생각의 힘을 통해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위대한 과학적 원리를 발견했다. 과학적인 발상은 전문 과학자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도 아니다. 와이파이Wi-Fi의 원리인 ‘주파수 도약 이론’을 창안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헤디 라마(Hedy Lamarr)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1940년대 할리우드의 스타 헤드비히 에바 마리아 키슬러(Hedwig Eva Maria Kiesler, 1914~2000)였다. 또, 췌장암으로 사망한 삼촌을 애도하다가 진단 센서를 개발한 이는 당시 15세의 고등학생 잭 안드라카(Jack Andraka)였다. 그가 만든 췌장암 진단 센서는 소요시간 5분에 비용은 단 3센트로, 기존 검사보다 168배 빠르고 2만 6천 배나 저렴하지만 거의 백 퍼센트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구경이 아닌 관찰
관찰(觀察)은 발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관찰은 발상을 낳고, 발상은 관찰을 부른다. 무언가를 관찰하다 보면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고, 머릿속으로 한 발상을 뒷받침해 줄 근거나 예들을 찾노라면 세밀한 관찰이 필요하게 된다.

관찰은 눈으로 한다. 관찰하는 눈은 육체의 물리적인 눈만을 뜻하지 않는다. 온몸의 눈, 마음의 눈, 영혼의 눈, 존재의 눈 등을 포함한다. 관찰할 때 나는 몸의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가동하고, 인간 존재의 모든 능력을 총체적으로 활용한다. 관찰하는 나는 감각, 인지, 분석, 해석, 비판, 통찰 등의 종합적인 감각 및 사고 활동을 한다. 대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 경탄과 분노 등의 감정을 갖기도 하며, 그런 자신을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도 한다. 관찰하는 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며, 고정된 나가 아니라 부지런히 움직이고 성장하는 나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수동적으로 보고,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주체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 생각의 주체, 관찰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독창적인 글을 쓸 수도 없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킬 가치 있는 일을 해내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삶과 세계의 무료한 구경꾼에 불과하다. 생각 없는 구경꾼들로 넘쳐나는 세계는 죽어가는 세계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세계이다. 구경꾼은 생각도, 사랑도, 책임도, 의무도, 권리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잠시 반짝였다 사라지는 얄팍한 호기심을 발동했다가 이내 그 자리를 떠난다.

인간은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시대・사회와 개인의 한계 속에서 대체로 보이는 것만을 보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그런데 인간이 지닌 편협하고 불완전한 시각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관찰의 필요성을 되돌려 준다. 본다는 것은 알아간다는 뜻이며, 나와 세계를 관찰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행동한다는 뜻이다. 관찰은 더 많이 보기 위해, 더 깊고 넓게 보기 위해, 더 균형 있게 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나만의 전지적 시점이나 자의적 시점을 최대한 벗어나는 일이다. 눈을 돌려 다른 것을 응시하고, 같은 대상이라도 다른 시선으로 응시해 보자. 새내기 대학생인 나는 지금 어떤 눈으로 나 자신과 세상을 보고 있으며, 보아야 하는가? 관찰하는 나는 질문하는 나이며, 대답을 찾아가는 나이다.